원빌딩 SNS 돌발변수 긴장감 최고조에 만난 한·미 정상…140분 뒤 웃으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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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직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글을 올리며 파국 가능성까지 제기된 가운데 시작한 회담은 양국 정상이 대화에 대화를 거듭하며 서서히 분위기를 풀어갔다. 생중계된 정상회담에 이어 확대회담에 오찬까지 함께한 한·미 정상은 시간이 갈수록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쌓았고, 140분 뒤 이 대통령은 기분 좋게 백악관을 나설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불과 3시간 앞두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게시물을 올렸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로 글을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며 “우리는 그곳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백악관에서 새 대통령(이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라며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고 글을 마쳤다.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급작스럽게 한국과 관련한 트럼프의 언급이 올라온 탓에 회담을 준비하던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허위 계정이거나 가짜뉴스 아니냐는 설왕설래가 오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워싱턴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공식 계정인지 좀 확인을 해봐야 될 상황인 것 같다”며 “지금 상당히 페이크 뉴스(가짜뉴스)들이 이래저래 국내에도 그렇고 좀 많이 뜨고 있는 상황이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회담 상대인 트럼프 대통령이 올렸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당황하고 있는 듯한 답변이었다.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그 내용이 탄핵 반대 집회나 부정선거론자들의 주장을 수용했을 법한 내용으로 유추될 소지가 있어 회담준비팀의 당황스러움과 충격이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측의 요청으로 정상회담 시간까지 지연되면서 이 대통령 등 회담 참석자들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 대통령은 당초 예정된 낮 12시를 30여분 넘긴 12시33분 회담장이 있는 백악관에 도착했다. 이 대통령은 초조한 표정이 묻어난 채로 백악관 입구에서 차량에 내렸고 마중을 나온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했다.
이 대통령이 백악관 방명록에 ‘한·미동맹의 황금시대 강하고 위대한 미래가 새로 시작됩니다’라고 쓴 뒤부터 얼어있던 분위기는 서서히 녹기 시작했다. “영어와 한국어 중 어느 언어가 정확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며 대화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서명에 쓴 대통령실 제작 펜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직접 가져온 것이냐”, “어디서 받은 것이냐”, “두께가 굉장히 마음에 든다”, “정말 멋지다”며 관심을 보인 트럼프 대통령은 “가져갈 거냐”라고 물었고, 이 대통령은 즉석에서 선물로 증정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께서 하시는 아주 어려운 그 사인에 유용할 것”이라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감사를 표하며 “가시기 전에 선물을 드리겠다”고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받은 선물을 봤는데, 사진첩이더라”고 말했다.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시작된 회담은 배석자들과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1시간 가까이 생중계로 진행됐다. 한국 측에서는 조현 외교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미국 측은 J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양 정상의 좌우에 착석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 참모진도 배석자 뒤에 서서 회담에 참석했다. 강경화 주미국 대사 내정자도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회담장에 함께했다.
생중계로 공개된 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피스메이커 역할이 정말로 눈에 띈다” “실제로 성과를 낸 경우는 처음”이라는 등 한껏 치켜세웠고, 트럼프 대통령은 “힐러리 클린턴이 이겼다면 한국에는 핵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하는 모습도 보였다.
기자들의 질의가 이어지며 30분으로 예상했던 공개 회담 시간은 53분 동안 진행됐다. 시작 전 긴장감은 어느샌가 사라진 모습이었다. 강 대변인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서로에 대한 칭찬과 덕담이 오가며 끝날 때까지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고 전했다.
비공개로 전환 후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열린 확대회담과 연이어 열린 오찬은 화기애애해진 분위기를 끌어올린 시간이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줬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등에 대한 생각을 묻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초청 의사를 전하며 김 위원장과의 만남도 추진해 보자고 권했다. “슬기로운 제안”이라고 평가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당신은 전사다”“미국으로부터 완전한 지원을 받게 될 것”이라며 여러 차례 친밀감을 강조했다. “위대한 사람이고 위대한 지도자”라고 이 대통령을 극찬한 뒤 “난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다”는 메시지를 써 전달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 암살 위협으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며 “우리 둘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고 했고 상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여자 프로선수들의 골프 실력이 왜 좋은지” 물었고, 이 대통령은 “손재주가 좋은 민족적 특성과 연관 있는 듯하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찬장에 자리한 한국 참모진 이름표에 서명해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기프트룸으로 안내해서는 모자, 골프공, 골프티, 커프스핀 등을 가리키며 “마음에 드는 걸 골라 가라”며 서명을 해준 뒤, 백악관 기념주화까지 선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만나라고 한 지도자는 처음”이라며 이 대통령을 향해 “정말 똑똑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예정보다 길게 진행된 오찬을 마칠 때 아쉬워한 트럼프 대통령은 “대단한 진전, 대단한 사람들, 대단한 협상이었다”라며 이 대통령과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눴다고 강 대변인은 전했다. 146분의 정상회담과 오찬을 마친 이 대통령의 손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피습 당시 사진이 담긴 책자가 들려 있었다. 이 대통령이 백악관 입장 때 “이시바 총리가 선물로 받았다”고 말한 책자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26일 내년도 예산안에 연구·개발(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기로 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2026년도 예산안 당정 협의회 후 기자들과 만나 “당정은 지난 정부가 R&D 예산을 줄인 과오를 줄이고, R&D 예산을 역대 최대로 편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한 정책위의장은 “인공지능(AI) 3대 강국과 기본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GPU(그래픽처리장치) 추가 구매 등 필요한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는 한편 창업, 구직 등 국민의 실생활에 AI가 도움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AI 서비스가 이뤄지도록 AI 관련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 정책위의장은 “(정부의) ABCDEF 첨단산업 분야별 핵심 기술에 집중적이고 적극적으로 R&D 분야는 투자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정은 AI·반도체·바이오 등 미래전략 산업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신규 펀드도 조성하기로 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차원의 투자도 적극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전환할 경우 추가 지원하는 전기차 전환 지원금을 신설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정 협의회에서 “과거의 잘못이 되풀이돼선 절대 안 되는데 (윤석열 정부의) R&D 축소, 세수 결손과 같은 실책이 없어져야 한다”며 “이재명 대통령도 2026년 R&D 예산이 사상 최대라고 강조했다. 미래 투자는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 3대 투자 중점으로 기술이 주도하는 초혁신 경제 달성, 기본이 튼튼한 사회를 마련하기 위한 모두의 성장, 국민 안전과 국익 중심의 외교 안보 등을 꼽았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은 성과 중심으로 줄일 것은 줄이거나 없애고, 해야 할 것은 과감히 집중 투자해 회복과 성장을 견인하는데 집중됐다”고 말했다.
구 부총리는 “미래 성장 동력을 선점할 수 있도록 R&D에 최대 투자하고, K컬처의 글로벌 확산을 뒷받침하겠다”며 “통상 현안의 대응을 위해 글로벌 통상 협력을 추진하고,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등 에너지 전환에도 집중 투자하겠다”고 했다.
1997년 말 대한민국을 강타한 외환위기를 기억할 것이다. 이 위기의 시대, 정부가 주도한 정보통신 분야 지원은 2000년대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었다. 특히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균질하고 빠른 인터넷망은 현재 한국의 인상을 만드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느린 인터넷이나 와이파이망에 분노하는 밈, 외국인이 한국의 빠르고 편리한 정보통신망에 감탄하는 장면 같은 것은 이제 진부할 정도다.
이 시대 정보통신 분야의 지원은 한국학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처음에는 일자리를 잃은 이들을 위해 마련된 공공근로사업 형태로 학계에 자잘한 일거리가 떨어졌다. 그러다 1999년 장기적인 계획에 따른 본격적인 일감이 만들어졌다. 정부에서 고급 정보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기치 아래 ‘한국역사통합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을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고문헌과 고지도, 근현대 발간된 자료 등 한국학 제반 분야의 자료를 전산화하겠다는 사업이었다. 고문헌의 한자를 입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글 및 영문 번역까지 염두에 두고 매년 100억~200억원씩 2002년까지 지원하겠다고 한 원대한 사업이었다. 당시 기사를 보면 “국사, 국문 등 국학 분야와 영문, 전산 분야의 석사 학위 이상 소지자 500여명이 투입될 것으로 보여 실업난이 심각한 이들 분야의 실업자 구제에도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하기도 했다. 이때 ‘석사 학위 이상’을 소지한 ‘실업자’로 구제받은 당사자가 바로 필자다.
그 시절을 회상하면, 헤쳐나가야 했던 수많은 난제와 시행착오들이 떠오른다. 한자 입력 방식, 자연어 검색 엔진 개발, 문서 형식 표준(XML) 마련, 최종 구현 형태 등 기술적인 문제들도 있었지만, 다양한 이체자와 발음이 있는 한자의 입력·검색 기준 마련, 비정형적인 문서 형태 분석, 사용자의 필요에 맞는 구현 형태 등 한국학 연구자가 풀어야 하는 문제들도 있었다. 입력된 초벌 본문을 가지고 교정, 교감, 표점으로 나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당시 광학문자인식(OCR) 기술로 변환한 초기 입력물은 정확도가 98%가 되지 않았다. 잘 모르는 사람은 이 정도면 상당히 정확하다고 볼지 모르겠으나, 실제 작업을 진행해보면 이 입력물은 쓸 수가 없다. 오자가 많은 입력물은 아무리 전문가가 재교, 삼교를 하더라도 그 오류가 완전히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학 자료들이 전산화되자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었다. 초기 한류를 이끈 드라마 <대장금>은 <조선왕조실록> 전산화 덕분이었다.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시대극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전산화 작업과 그를 바탕으로 한 연구서와 대중서 덕분이다. 그런 측면에서 ‘고급 정보기반’을 만들겠다고 한 1999년의 기획은 충분한 결실을 거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한국학 분야의 전산화 사업과 번역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 규모와 지속성에는 의문스러운 점이 많이 있다. 특히 지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의 여파는 쥐꼬리만 하던 한국학 분야의 예산에까지 미쳤다. 새로운 번역 예산이 깎인 건 둘째 치고, ‘석사 학위 이상의 실업자’ 신세인 연구자들이 작업하던 문헌 정리 사업도 날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문 입력과 번역을 다 완료한 작업물을 서버에 올릴 푼돈까지 깎았다는 이야기에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다들 인공지능(AI) 시대를 운운하고 갖가지 거대언어모델(LLM)을 이야기하느라 시끌시끌하다. 그러나 데이터 구축 없이 LLM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기술과 데이터 뒤에는 그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얼마 전 베이징대에서 구축한 고문헌 사이트는 AI 활용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한국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무언가에 영혼을 판 건 아닌가 하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그 무언가가 대개는 돈과 권력일 텐데, 하물며 반성의 기미조차 없으니 답답함이 찜통더위 저리 가라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과 권력이었을까. 아니면 돈과 권력보다 더 큰 무언가를 얻고자 했을까. 실제로 그들이 영혼을 팔았는지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오래전부터 영혼을 판 사람들의 끝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1890년 발표한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1910년 무성영화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되었고, 국내에서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진 걸작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스무 살이 넘었지만 “소년의 모습”을 한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화가 바질 홀워드는 홀린 듯 그의 초상화를 그렸고 “세상 사람들의 경박한 눈길에 내 영혼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며 전시조차 거부하고 있었다. 문제는 도리언 그레이였다. 나르키소스가 샘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반했듯, 자신의 초상화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끝내 하지 말아야 할 약속을 하고 말았다. 초상화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간직할 수만 있다면, 영혼도 팔 수 있다고 그는 약속했다.
영혼은 아니지만, 영혼의 무게와 진배없는 그림자를 판 사람도 있었다. 프랑스 출신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가 1814년 출간한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주인공 페터 슐레밀은 가난한 청년이었다. 슐레밀에게 유혹의 손길을 내민 것은 “회색 옷 입은 남자”였다. 그는 슐레밀에게 “행운의 자루”를 내밀며 “당신의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자”를 팔라고 청했다. 행운의 자루는 이름처럼 슐레밀에게 행운, 즉 부와 명예를 안겨주었다. 성정이 맑았던 슐레밀은 혼자서 호의호식하지 않았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매번 주머니를 열었고, 사람들은 도움에 감사했다. 그런 슐레밀의 평판이 좋아진 것이야 당연지사.
영혼을 판 도리언 그레이는 어떻게 됐을까. 애초의 바람처럼 그의 아름다움은 변치 않았다. 하지만 그토록 밝게 빛났던 초상화의 모습은 사악한 모습으로 점점 변해갔다. 현실에서 자기 탐닉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초상화의 도리언 그레이는 타락하고 사악한 모습이 됐다. 영혼을 판 것은 그 자신인데, 그가 겨눈 칼은 초상화를 그린 바질 홀워드에게 향했다. 홀워드를 죽인 도리언 그레이는 초상화마저 찔렀다. 그렇게 하면 아름다웠던 자신의 모습이 회복될 줄 알았다. 짐작대로겠지만, 도리언 그레이의 마지막이 궁금하다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그림자를 판 슐레밀은 어떻게 됐을까. 슐레밀에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의 첫 반응은 ‘불쌍하다’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림자 없는 슐레밀을 다시 보려고 하지 않았다. 다들 못 볼 걸 본 것처럼 밀어냈다. 회색 옷 입은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림자를 돌려줄 테니 영혼을 달라고 그는 말했다. 슐레밀의 선택이 궁금하다면 <그림자를 판 사나이> 역시 읽어볼 일이다.
고흐는 진짜 자기 모습을 그리려고 귀를 잘랐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 송화는 소리를 얻기 위해 눈을 내놓았다. 두 사람의 선택이 옳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릇 영혼을 팔 심산이라면 삶을 향한 애정과 숭고한 가치를 세상에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도 무언가에 영혼을 판 사람은 아닌가, 서글픈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속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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