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사무소 한글로만 돼 있던 체납고지서, 영어·중국어·베트남어도 넣는다[서울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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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사무소 서울 동대문구가 자동차세 및 주민세를 체납한 외국인들에게 맞춤형 체납안내문을 발송한다고 18일 밝혔다.
발송대상은 주민세 체납자 1953명과 자동차세 체납 314건으로 체납액은 각각 1200여 만원, 3억2000여 만원이다.
그동안 정기분 세금고지서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해 발송해왔으나, 체납고지서는 한글로만 제작, 발송해왔다.
서울시에서 마련한 다국어 체납고지서가 있지만 언어별로 체납자를 분류하고 인쇄하는 절차가 까다롭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따라 동대문구는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를 병기한 체납 안내문을 자체 제작했다.
안내문 앞면은 기존 체납고지서 형식을 유지하면서 신한·우리·농협은행 등 주요은행 전용계좌를 명시했다. 뒷면에는 체납 시 불이익 내용을 한국어,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4개 언어로 안내했다.
해당 안내문은 9월 18일 우편 발송할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에게 정확한 납부정보를 제공해 납세의식 제고, 알 권리 보장, 납부편의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파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를 암살한 용의자 타일러 로빈슨의 범행 동기를 둘러싸고 각 진영이 반대 진영을 비난하기 위해 부정확한 정보를 성급하게 퍼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여러 정치적 세력이 커크의 살해 직후 반대편의 사악함에 관한 믿음을 입증할 수 있는 정보를 찾아 헤맸다고 분석했다.
로빈슨의 검거 이후 그의 범행 동기를 두고 각 진영은 서로 반대 진영의 이념에 기반한 것이라고 해석을 쏟아 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지난 15일 (커크의 죽음에는) ‘조직적인 캠페인’이 있었다며 좌파의 거대한 국내 테러 운동을 단속하기 위해 연방 정부의 자원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주로 진보적 성향의 이용자들이 사용하는 SNS 블루스카이에는 커크보다 훨씬 극우적인 이념으로 인해 (로빈슨이)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게시됐다.
스펜서 콕스 유타 주지사는 지난 14일 로빈슨이 좌파적 이념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수사 결과 로빈슨의 어머니는 아들이 지난 1년 동안 좌파, 트랜스젠더 인권 지향적이 됐다고 말했다. 또, 로빈슨은 특정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앞서 있었던 두 차례의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신들은 수사 결과 로빈슨의 범행 동기가 아직까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음을 짚었다. NYT는 공소장에는 로빈슨이 급진적인 좌파 트랜스젠더 테러 조직이나 진보적 급진주의자들의 광대한 네트워크와 협력하고 있다는 암시가 전혀 없었다며 이는 SNS에 떠도는 가설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했다. AP통신은 많은 사람들이 커크의 죽음을 논의할 때 ‘그들(반대편 진영)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총격범의 동기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로빈슨의 범행 동기를 추측하고 비난의 근거로 삼는 관행에 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피트 부티지지 전 미 교통장관은 성급하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 병폐라며 미국인들은 온라인에서 범인이 다른 정치 진영에 속해 있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SNS가 이러한 양극화된 주장을 확산시키는 것에 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라 에델슨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분열을 조장하는 콘텐츠 확산이 의도적인 목표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수익 극대화를 위한 (SNS 기업의) 결정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이날 미국 검찰은 로빈슨에 대해 가중살인 등 6건의 혐의로 정식 기소했으며 사형을 구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 연희동의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과 <지중해 요리> <히데코의 일본 요리> 등 책을 통해 잘 알려진 요리 전문가 나카가와 히데코는 아버지가 즐겨 하던 서른일곱 가지 요리법을 웹사이트 상위노출 책 한 권에 모았다. ‘옥수수 크림수프’가 표지를 장식한 책의 제목은 <아버지의 레시피>다. 얼마 전 새 책을 들고 일본 가나자와의 요양원을 찾은 히데코가 만난 91세의 아버지는 예의 낙천주의자의 웃음을 지었지만, 딸인지 여동생인지 헷갈리는 듯 보였다.
아버지 나카가와 다모쓰는 일본 최초의 뷔페(바이킹)를 선보인 도쿄제국호텔 출신 정통 프랑스 요리사다. 여러 특급호텔을 거쳐 주서독일 일본대사관 요리사로 파견 근무를 하기도 했고 해외에서 프랑스 요리를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대 자크 시라크 당시 파리 시장에게 상을 받기도 했다. 1999년 후지 스카이리조트 레스토랑 총조리장으로 정년퇴직한 후에는 도쿄에 작은 레스토랑 ‘이로도리’를 열고 오너셰프로 일했다. 요즘도 일본 여행을 가는 관광객들이 즐겨 먹는 오므라이스,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당시 인기 메뉴였다.
대를 이은 ‘요리사 부녀’ 스토리의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보수적인 어머니는 도쿄의 여자대학 영양학과를 권했지만, 독일어를 전공한 딸은 졸업 후 바르셀로나로 떠나버렸다. 기자를 꿈꾸며 도쿄신문 국제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스페인과 독일에서 현지 제약회사 지사장 비서와 통신원으로 일하며 독립생활을 만끽했다. 이후 대학원 1년을 기약하고 건너온 한국에서 일본어 강사를 하다가 한국 남자를 만났고 귀화 한국인이 됐다.
어려서는 요리사라는 직업이 싫었던 거 같다. 불과 칼이 있는 주방이 무서워 보였다. 아름답지 않은 곳에서 굳이 일해야 하나 싶었던 것 같다.
다른 아빠들처럼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지 않고, 남들 다 쉬는 날에도 집을 비우기 일쑤인 아버지가 어린 딸은 늘 불만이었다.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을 정도로 요리에 관심은 있었지만, 진로에서는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런 딸이 요리를 업으로 삼은 건 마흔 살에 접어들면서다. 이웃들 사이에서 요리 솜씨 좋기로 소문났던 그는 2008년 아파트를 떠나 지금의 주택으로 이사하며 요리교실을 열었다. 정작 부모님께는 첫 책이 나온 뒤에야 이 사실을 알렸다.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는 어머니는 히데코, 네가 요리교실을 열다니. 왠지 한국분들께 죄송하네라고 응수했다. 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했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히데코 가족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어머니의 불안 증세가 깊어지자 부모님은 도쿄생활을 접고, 휴양지로 잘 알려진 가나가와현 오이소로 거처를 옮겼다. 78세에 레스토랑 주방을 떠나며 아버지는 자신이 쓰던 칼, 요리책, 노트 등을 국제우편으로 한국에 있는 딸에게 보내왔다.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을 만드는 데 실수하면 안 되잖니라는 편지와 함께. 오래돼 변색된 노트 속에는 색색의 색연필로 그린 요리 그림과 레시피가 담겨 있었다. 말 그대로 아버지의 60년 요리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보물 상자였다.
요리교실을 시작한 뒤부터 아버지에게 레시피를 묻는 메일을 보내면 답을 보내주셨다. 그렇게 주고받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너무 든든했다.
자식들 생일날이나 크리스마스에 집을 지키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크리스마스이브 오후에 슬쩍 집에 들러 빨간 리본으로 다리를 묶은 로스트치킨을 선물처럼 배달하는 다정한 가장이었다. 딸은 철이 들고 나서야 그 대목에 셰프가 잠깐의 짬을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하게 됐다. 히데코는 아버지의 마지막 레스토랑 이로도리에서의 10년이 내가 부모님과 평온한 시간을 보냈던 마지막 한때였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일본에 갈 때면 넓지 않은 주방에서 아버지와 손발을 맞추고, 10시 즈음 남은 채소를 봉투에 넣고 퇴근한 아버지와 샐러드를 만들어 와인 잔을 기울이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흔 넘어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의 아버지가 가장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독일 근무까지 자청한 건 화려한 이력으로 성공하겠다는 야망보다는 호기심이 컸기 때문인 것 같다고 딸은 해석했다.
능수능란한 처세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는 연회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거대한 얼음 조각까지 직접 작업할 정도로 요리에만은 진심이었다.
아버지에게 중요한 건 요리 자체였다면, 나에게 요리는 나답기 위한 수단이다. 스페인에서도, 한국에서도 내가 외로울 때 사람들과 함께 있기 위해서 밥을 했다. 그 과정이 내게 힐링이 되어주었다.
매년 150명 이상 대기할 정도로 그의 요리교실이 입소문을 탄 데는 여럿이 어울려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얻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공유하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도 한때 프랑스 레스토랑과 ‘나카가와 요리교실’을 병행 운영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레시피 노트를 받아든 딸은 ‘아버지 레시피’라는 이름의 수업을 개설했다. 네 살 터울의 남동생도 마흔 살에 대기업을 그만두고 ‘알렘빅 진’을 만들며 양조업에 뛰어든 것을 보면 아버지가 물려준 요리에 대한 감각은 유전자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일본, 스페인, 프랑스, 한국 가정식을 넘나들며 독창적인 레시피를 구현하는 히데코는 요즘도 요리하다가 막힐 때면 아빠라면 이렇게 하겠지라며 답을 찾는다. 몇년 전 초당옥수수가 등장한 뒤로 비로소 비슷한 맛을 낼 수 있게 된 옥수수 크림수프를 비롯해 도넛 모양의 파인애플 한 조각이 통으로 올라가는 ‘파인애플 포크소테’, 히데코 요리교실의 인기 메뉴가 된 ‘에그 그라탱’ 등 노스탤지어 짙은 아버지의 레시피를 재현하며 과거와 현재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옥수수 크림수프
재료 = (4~6인분) 크림 스타일 옥수수 통조림 1캔(400g), 양파 1개, 올리브오일 1큰술, 닭 육수 혹은 채소 육수 1ℓ, 월계수 잎 2장, 소금·후추·설탕 약간, 생크림 50㎖
·베샤멜소스 = 버터 50g, 밀가루(박력분) 75g, 우유 500㎖
1 소스팬에 버터를 타지 않도록 녹인 후 밀가루를 넣고 약불에서 잘 섞는다. 밀가루가 고슬고슬 볶아지면 우유를 넣어 크림 상태로 갠 후 잘 저으며 약불에서 끓여 베샤멜소스를 만든다.
2 다른 냄비에 올리브오일을 두른 후 중불에 얇게 썬 양파를 볶는다. 통조림 옥수수를 추가해 가볍게 볶다가 닭 육수와 월계수 잎을 넣어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인 뒤 20분 정도 푹 끓인다.
3 2에서 월계수 잎을 빼고 핸드믹서로 곱게 간 뒤 ①의 베샤멜소스를 넣어 약불에서 섞는다. 간을 맞춘 뒤 마지막으로 생크림을 추가한다.
파인애플 포크소테
재료 = (4인분) 돼지고기 목살 8조각(800g), 파인애플 슬라이스 8조각, 올리브오일 1큰술, 소금·후추·밀가루 적당량
·소스 = 토마토 퓌레 1컵, 화이트와인(또는 청주) 1컵, 우스터소스 4큰술, 케첩 4큰술, 간장 2작은술, 소금 약간, 겨자(취향에 따라) 적당량
1 돼지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밑간한 뒤 양면에 밀가루를 얇게 입힌다.
2 분량의 재료를 모두 섞어 소스를 만든다.
3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중불로 가열한 뒤 1의 돼지고기를 넣어 강불로 굽다가 양면이 노르스름해지면 중불로 줄인다. 돼지고기 위에 파인애플 슬라이스를 올리고 뚜껑을 덮어 약불로 2분 정도 속까지 잘 익힌다.
4 잘 구워진 돼지고기를 접시에 올리고, 팬에 남아 있는 파인애플에 ②의 소스를 넣고 약불에서 한소끔 끓인 뒤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후 돼지고기 위에 올린다.
에그 그라탱
재료 = (4인분) 삶은 달걀 4개, 양파 1개, 햄 4장, 닭 정육 300g, 양송이버섯 6개, 파스타(펜네) 250g, 화이트와인 ½컵, 버터 50g, 밀가루 50g, 우유 500~700㎖, 그뤼에르 치즈·소금·후추 적당량
1 양파와 양송이버섯은 얇게 썰고, 햄과 닭고기는 잘게 자른다. 달걀은 세로 방향으로 반으로 가른다.
2 냄비에 버터를 넣고 양파를 볶다가 부드러워지면 닭고기를 넣는다. 화이트와인을 추가한 뒤 월계수 잎, 소금, 후추를 넣은 다음 밀가루를 추가해 볶는다. 우유를 넣어 크림 상태가 되면 양송이버섯과 햄을 넣어 섞는다.
3 펜네를 알덴테보다 보드라울 정도로 삶는다.
4 오븐 용기에 2와 ③을 섞어 담고 달걀을 얹는다. 그뤼에르 치즈를 뿌리고 오븐(그릴)에서 200도로 10분 정도 치즈가 살짝 탈 정도로 구운 뒤 후추나 다진 파슬리 등을 뿌린다.
<아버지의 레시피>에서 발췌
발송대상은 주민세 체납자 1953명과 자동차세 체납 314건으로 체납액은 각각 1200여 만원, 3억2000여 만원이다.
그동안 정기분 세금고지서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해 발송해왔으나, 체납고지서는 한글로만 제작, 발송해왔다.
서울시에서 마련한 다국어 체납고지서가 있지만 언어별로 체납자를 분류하고 인쇄하는 절차가 까다롭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따라 동대문구는 한국어와 영어, 중국어를 병기한 체납 안내문을 자체 제작했다.
안내문 앞면은 기존 체납고지서 형식을 유지하면서 신한·우리·농협은행 등 주요은행 전용계좌를 명시했다. 뒷면에는 체납 시 불이익 내용을 한국어, 영어, 중국어, 베트남어 등 4개 언어로 안내했다.
해당 안내문은 9월 18일 우편 발송할 예정이다.
구 관계자는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에게 정확한 납부정보를 제공해 납세의식 제고, 알 권리 보장, 납부편의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파 청년 활동가 찰리 커크를 암살한 용의자 타일러 로빈슨의 범행 동기를 둘러싸고 각 진영이 반대 진영을 비난하기 위해 부정확한 정보를 성급하게 퍼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여러 정치적 세력이 커크의 살해 직후 반대편의 사악함에 관한 믿음을 입증할 수 있는 정보를 찾아 헤맸다고 분석했다.
로빈슨의 검거 이후 그의 범행 동기를 두고 각 진영은 서로 반대 진영의 이념에 기반한 것이라고 해석을 쏟아 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지난 15일 (커크의 죽음에는) ‘조직적인 캠페인’이 있었다며 좌파의 거대한 국내 테러 운동을 단속하기 위해 연방 정부의 자원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주로 진보적 성향의 이용자들이 사용하는 SNS 블루스카이에는 커크보다 훨씬 극우적인 이념으로 인해 (로빈슨이)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주장들이 게시됐다.
스펜서 콕스 유타 주지사는 지난 14일 로빈슨이 좌파적 이념을 따르고 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수사 결과 로빈슨의 어머니는 아들이 지난 1년 동안 좌파, 트랜스젠더 인권 지향적이 됐다고 말했다. 또, 로빈슨은 특정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며 앞서 있었던 두 차례의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신들은 수사 결과 로빈슨의 범행 동기가 아직까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음을 짚었다. NYT는 공소장에는 로빈슨이 급진적인 좌파 트랜스젠더 테러 조직이나 진보적 급진주의자들의 광대한 네트워크와 협력하고 있다는 암시가 전혀 없었다며 이는 SNS에 떠도는 가설적인 이야기일 뿐이라고 했다. AP통신은 많은 사람들이 커크의 죽음을 논의할 때 ‘그들(반대편 진영)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총격범의 동기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도 로빈슨의 범행 동기를 추측하고 비난의 근거로 삼는 관행에 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피트 부티지지 전 미 교통장관은 성급하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 병폐라며 미국인들은 온라인에서 범인이 다른 정치 진영에 속해 있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SNS가 이러한 양극화된 주장을 확산시키는 것에 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라 에델슨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분열을 조장하는 콘텐츠 확산이 의도적인 목표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수익 극대화를 위한 (SNS 기업의) 결정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말했다.
이날 미국 검찰은 로빈슨에 대해 가중살인 등 6건의 혐의로 정식 기소했으며 사형을 구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 연희동의 요리교실 ‘구르메 레브쿠헨’과 <지중해 요리> <히데코의 일본 요리> 등 책을 통해 잘 알려진 요리 전문가 나카가와 히데코는 아버지가 즐겨 하던 서른일곱 가지 요리법을 웹사이트 상위노출 책 한 권에 모았다. ‘옥수수 크림수프’가 표지를 장식한 책의 제목은 <아버지의 레시피>다. 얼마 전 새 책을 들고 일본 가나자와의 요양원을 찾은 히데코가 만난 91세의 아버지는 예의 낙천주의자의 웃음을 지었지만, 딸인지 여동생인지 헷갈리는 듯 보였다.
아버지 나카가와 다모쓰는 일본 최초의 뷔페(바이킹)를 선보인 도쿄제국호텔 출신 정통 프랑스 요리사다. 여러 특급호텔을 거쳐 주서독일 일본대사관 요리사로 파견 근무를 하기도 했고 해외에서 프랑스 요리를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1970년대 자크 시라크 당시 파리 시장에게 상을 받기도 했다. 1999년 후지 스카이리조트 레스토랑 총조리장으로 정년퇴직한 후에는 도쿄에 작은 레스토랑 ‘이로도리’를 열고 오너셰프로 일했다. 요즘도 일본 여행을 가는 관광객들이 즐겨 먹는 오므라이스, 나폴리탄 스파게티가 당시 인기 메뉴였다.
대를 이은 ‘요리사 부녀’ 스토리의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보수적인 어머니는 도쿄의 여자대학 영양학과를 권했지만, 독일어를 전공한 딸은 졸업 후 바르셀로나로 떠나버렸다. 기자를 꿈꾸며 도쿄신문 국제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스페인과 독일에서 현지 제약회사 지사장 비서와 통신원으로 일하며 독립생활을 만끽했다. 이후 대학원 1년을 기약하고 건너온 한국에서 일본어 강사를 하다가 한국 남자를 만났고 귀화 한국인이 됐다.
어려서는 요리사라는 직업이 싫었던 거 같다. 불과 칼이 있는 주방이 무서워 보였다. 아름답지 않은 곳에서 굳이 일해야 하나 싶었던 것 같다.
다른 아빠들처럼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지 않고, 남들 다 쉬는 날에도 집을 비우기 일쑤인 아버지가 어린 딸은 늘 불만이었다.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을 정도로 요리에 관심은 있었지만, 진로에서는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런 딸이 요리를 업으로 삼은 건 마흔 살에 접어들면서다. 이웃들 사이에서 요리 솜씨 좋기로 소문났던 그는 2008년 아파트를 떠나 지금의 주택으로 이사하며 요리교실을 열었다. 정작 부모님께는 첫 책이 나온 뒤에야 이 사실을 알렸다.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는 어머니는 히데코, 네가 요리교실을 열다니. 왠지 한국분들께 죄송하네라고 응수했다. 아버지는 그저 웃기만 했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히데코 가족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어머니의 불안 증세가 깊어지자 부모님은 도쿄생활을 접고, 휴양지로 잘 알려진 가나가와현 오이소로 거처를 옮겼다. 78세에 레스토랑 주방을 떠나며 아버지는 자신이 쓰던 칼, 요리책, 노트 등을 국제우편으로 한국에 있는 딸에게 보내왔다. 사람 입에 들어가는 것을 만드는 데 실수하면 안 되잖니라는 편지와 함께. 오래돼 변색된 노트 속에는 색색의 색연필로 그린 요리 그림과 레시피가 담겨 있었다. 말 그대로 아버지의 60년 요리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보물 상자였다.
요리교실을 시작한 뒤부터 아버지에게 레시피를 묻는 메일을 보내면 답을 보내주셨다. 그렇게 주고받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너무 든든했다.
자식들 생일날이나 크리스마스에 집을 지키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크리스마스이브 오후에 슬쩍 집에 들러 빨간 리본으로 다리를 묶은 로스트치킨을 선물처럼 배달하는 다정한 가장이었다. 딸은 철이 들고 나서야 그 대목에 셰프가 잠깐의 짬을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하게 됐다. 히데코는 아버지의 마지막 레스토랑 이로도리에서의 10년이 내가 부모님과 평온한 시간을 보냈던 마지막 한때였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일본에 갈 때면 넓지 않은 주방에서 아버지와 손발을 맞추고, 10시 즈음 남은 채소를 봉투에 넣고 퇴근한 아버지와 샐러드를 만들어 와인 잔을 기울이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흔 넘어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의 아버지가 가장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독일 근무까지 자청한 건 화려한 이력으로 성공하겠다는 야망보다는 호기심이 컸기 때문인 것 같다고 딸은 해석했다.
능수능란한 처세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는 연회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거대한 얼음 조각까지 직접 작업할 정도로 요리에만은 진심이었다.
아버지에게 중요한 건 요리 자체였다면, 나에게 요리는 나답기 위한 수단이다. 스페인에서도, 한국에서도 내가 외로울 때 사람들과 함께 있기 위해서 밥을 했다. 그 과정이 내게 힐링이 되어주었다.
매년 150명 이상 대기할 정도로 그의 요리교실이 입소문을 탄 데는 여럿이 어울려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얻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공유하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도 한때 프랑스 레스토랑과 ‘나카가와 요리교실’을 병행 운영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레시피 노트를 받아든 딸은 ‘아버지 레시피’라는 이름의 수업을 개설했다. 네 살 터울의 남동생도 마흔 살에 대기업을 그만두고 ‘알렘빅 진’을 만들며 양조업에 뛰어든 것을 보면 아버지가 물려준 요리에 대한 감각은 유전자만큼이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일본, 스페인, 프랑스, 한국 가정식을 넘나들며 독창적인 레시피를 구현하는 히데코는 요즘도 요리하다가 막힐 때면 아빠라면 이렇게 하겠지라며 답을 찾는다. 몇년 전 초당옥수수가 등장한 뒤로 비로소 비슷한 맛을 낼 수 있게 된 옥수수 크림수프를 비롯해 도넛 모양의 파인애플 한 조각이 통으로 올라가는 ‘파인애플 포크소테’, 히데코 요리교실의 인기 메뉴가 된 ‘에그 그라탱’ 등 노스탤지어 짙은 아버지의 레시피를 재현하며 과거와 현재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옥수수 크림수프
재료 = (4~6인분) 크림 스타일 옥수수 통조림 1캔(400g), 양파 1개, 올리브오일 1큰술, 닭 육수 혹은 채소 육수 1ℓ, 월계수 잎 2장, 소금·후추·설탕 약간, 생크림 50㎖
·베샤멜소스 = 버터 50g, 밀가루(박력분) 75g, 우유 500㎖
1 소스팬에 버터를 타지 않도록 녹인 후 밀가루를 넣고 약불에서 잘 섞는다. 밀가루가 고슬고슬 볶아지면 우유를 넣어 크림 상태로 갠 후 잘 저으며 약불에서 끓여 베샤멜소스를 만든다.
2 다른 냄비에 올리브오일을 두른 후 중불에 얇게 썬 양파를 볶는다. 통조림 옥수수를 추가해 가볍게 볶다가 닭 육수와 월계수 잎을 넣어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인 뒤 20분 정도 푹 끓인다.
3 2에서 월계수 잎을 빼고 핸드믹서로 곱게 간 뒤 ①의 베샤멜소스를 넣어 약불에서 섞는다. 간을 맞춘 뒤 마지막으로 생크림을 추가한다.
파인애플 포크소테
재료 = (4인분) 돼지고기 목살 8조각(800g), 파인애플 슬라이스 8조각, 올리브오일 1큰술, 소금·후추·밀가루 적당량
·소스 = 토마토 퓌레 1컵, 화이트와인(또는 청주) 1컵, 우스터소스 4큰술, 케첩 4큰술, 간장 2작은술, 소금 약간, 겨자(취향에 따라) 적당량
1 돼지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밑간한 뒤 양면에 밀가루를 얇게 입힌다.
2 분량의 재료를 모두 섞어 소스를 만든다.
3 프라이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중불로 가열한 뒤 1의 돼지고기를 넣어 강불로 굽다가 양면이 노르스름해지면 중불로 줄인다. 돼지고기 위에 파인애플 슬라이스를 올리고 뚜껑을 덮어 약불로 2분 정도 속까지 잘 익힌다.
4 잘 구워진 돼지고기를 접시에 올리고, 팬에 남아 있는 파인애플에 ②의 소스를 넣고 약불에서 한소끔 끓인 뒤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 후 돼지고기 위에 올린다.
에그 그라탱
재료 = (4인분) 삶은 달걀 4개, 양파 1개, 햄 4장, 닭 정육 300g, 양송이버섯 6개, 파스타(펜네) 250g, 화이트와인 ½컵, 버터 50g, 밀가루 50g, 우유 500~700㎖, 그뤼에르 치즈·소금·후추 적당량
1 양파와 양송이버섯은 얇게 썰고, 햄과 닭고기는 잘게 자른다. 달걀은 세로 방향으로 반으로 가른다.
2 냄비에 버터를 넣고 양파를 볶다가 부드러워지면 닭고기를 넣는다. 화이트와인을 추가한 뒤 월계수 잎, 소금, 후추를 넣은 다음 밀가루를 추가해 볶는다. 우유를 넣어 크림 상태가 되면 양송이버섯과 햄을 넣어 섞는다.
3 펜네를 알덴테보다 보드라울 정도로 삶는다.
4 오븐 용기에 2와 ③을 섞어 담고 달걀을 얹는다. 그뤼에르 치즈를 뿌리고 오븐(그릴)에서 200도로 10분 정도 치즈가 살짝 탈 정도로 구운 뒤 후추나 다진 파슬리 등을 뿌린다.
<아버지의 레시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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